홍남기
홍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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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8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
임기 | 2018년 12월 11일 ~ 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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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 문재인 |
총리 | 이낙연 → 정세균 → 김부겸 |
전임 | 김동연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60년 7월 29일 | (65세, 만 64세)
출생지 |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
본관 | 남양 |
학력 | 한양대학교 경제학 학사 샐포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
경력 |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 국장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국무조정실장 |
자녀 | 2남 |
종교 | 천주교 |
신체정보 | |
신장 | 170cm |
혈액형 | B형 |
서훈 | 녹조근조훈장 |
군사 경력 | |
군복무 | 제2국민역 (만성 간염)[1] |
코로나 시국의 대한민국의 경제 정책을 잘 이끌었다고 평가받으나, 재난지원급 지급 문제 등으로 인해 친이재명[a]의 세력의 대표적인 악마화 타깃 중 하나
홍남기(洪楠基, 1960년 7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인 공무원이다.[2]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이기도 하며, 그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를 마칠때까지 기재부장관 직을 수행하였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홍남기는 1960년 7월 29일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이북 출신으로 한국 전쟁 때 함경남도 원산과 황해도 해주에서 피란선을 타고 부산으로 갔다가 국제시장에서 만난 뒤 춘천에 정착했다고 한다.[3]
1979년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에 한양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 학위 취득했고, 1986년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금융증권전공으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병역판정검사에서 결핵으로 재검 대상으로 분류됐으며, 1985년 3월에 1급 현역병 입영 판정을 받았으나 10월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에서 간염 보균자 판정을 받았고, 1986년 12월에 다시 검사를 받은 결과 만성 간염이 6개월 이상 이어져 제2국민역으로 편입됐다.[3]
1986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기획원의 대외경제조정실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1992년에는 영국 솔퍼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개발경제학과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3] 1999년에는 미국 워싱턴주 정부 예산성에 1년동안 파견돼 근무했다.[3][4]
노무현 정부에서 2003년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비서관, 2006년 변양균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보좌관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때 이례적으로 금일봉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5] 즉, 홍남기는 문재인 뿐만 아니라 노무현의 신임도 받은 인사이다.그러니까 홍남기를 악마화하면서 친문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냥 친문이 아니다. 반문반노 찢빠지.
이명박 정부에서 2010년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사무처장 시절 당첨금을 20년간 분할 지급하는 연금복권520 발행을 주도했다. 2011년 기획재정부 대변인과 2012년 기획재정부 정책조정실장을 거쳐 2013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에 파견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실 기획비서관,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을 역임했다.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편집 | 원본 편집]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되었고, 2018년 11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지명되었다.[6][7] 12월 4일 인사청문회가 실시되었으며, 12월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다.[8] 이어 12월 10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해 임기를 시작하였다.[9] 홍 부총리는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매주 금요일 의견을 조율하기로 하였으며, 자영업자, 소상공인, 기업, 노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과의 소통을 약속하였다.[10]
최저임금을 단일한 위원회(최저임금위원회)가 아닌 2개의 위원회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구상을 검토하였다. 홍 부총리는 12월 27일 "가장 비중 있게 중점적으로 검토되는 것이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의 이원화"라고 말했다.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정하고, 결정위원회가 이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액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11]
재난지원금 지급범위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편집 | 원본 편집]
홍남기에 대한 여권 일각에서의 비토 심리는 2020년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두고 발생했다. 이때 홍남기 부총리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재정건전성을 위해 선별 지급을 주장하여 전국민 지급을 주장하는 여권 일각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전 국민 지급으로 결정되었는데, 당시에는 전국민 지급 여론이 강했고, 거기에 결정적으로 당시에는 코로나 시국 초기라 선별할 데이터 등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최초로 재난지원금을 주장한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의 명분부터 '갑자기 닥친 위기 상황에서의 국민 위로와 신속한 소득지원'이었고, 야당 미래통합당 대표 황교안이 홧김에 외친 것으로 추정되는 '전국민 50만원 재난지원금' 주장으로 재정건전성 논의의 요점이 지급액수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다음번 2차 재난지원금부터는 홍남기 부총리의 주장대로 보편지급보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선별지급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홍남기만의 의견이 아니었는데, 가장 먼저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했던 김경수 지사부터 이제는 신속함보단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지급하자고 주장했으며, 불과 몇달 전에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여 또 다시 전국민에게 지급하면 돈 뿌리기라는 오명을 사기도 쉬웠고,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에 의한 확진자 급증이 가시화되는데 재난지원금 지급은 사회활동 활성화로 이를 더 악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고 얼마 안 된 6월부터 홍남기 부총리는 추후 지원은 선별지원으로 하겠다고 선언했고, 여당의 홍남기 해임론은 그때부터 이미 나왔었다. 이로 인해 시작된, 재정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여당 일부와 홍남기 부총리간의 갈등은 홍남기 부총리가 11월 3일 사퇴 의사를 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홍남기와 각을 세우던 일부 여당 인사들은 홍남기 부총리가 자신의 사의 표명 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사의에 대한 해석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 표시로 보여진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홍남기 부총리가 사의를 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그 즉시 반려했고, 이 사실을 직접 밝혀도 좋다는 의사를 전함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12] 이를 보면 홍남기 부총리의 사의 표시는 부총리의 여당 압박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가 홍남기 부총리를 이렇게 강력하게 신임하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홍남기 부총리에 대한 공격은 2021년 6월 25일 이수진 동작 을 국회의원이 선별지급 고집 시엔 해임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고 압박하는 등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홍남기 부총리는 2021년 7월 현재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사임 이후 김부겸 국무총리가 취임하기 전까지의 국무총리 권한대행 기간에도 단순한 대타를 넘어 다양한 국정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모습으로 국회의원들과 설전을 주고받기까지 했는데,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이 있었기에 단순한 대행으로서의 현안 발표 이상의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도 갈등의 시작점이 되었던 2차부터 2021년 7월 현재 결정된 5차 재난지원금까지 선별지급으로 결정되었으니[b] 문재인 대통령은 끝까지 홍남기 부총리에게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내각을 신뢰한다고 밝혀 홍남기에 대한 신임을 드러냈고, 이후에도 홍남기 부총리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끝까지 홍남기 부총리에게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인한 기획재정부 장관 사의 표명[편집 | 원본 편집]
20대 대선에서 윤석열이 승리함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였고 홍남기는 윤석열 취임에 맞춰서 사의를 표명하였다. 관료 출신이고 보수 정부때도 직을 맡은 경험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오랬동안 경제부총리로 근무 함에 따라 문재인 정부 색이 강해졌고, 윤석열 정부의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추경호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어 물러나는 것에도 부담이 없어짐에 따라 기획재정부 장관 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평가[편집 | 원본 편집]
민정당계 정당의 정권과 민주당계 정권의 두루 신임을 받았으며 보수적으로 평가를 해도 할일은 하는 사람이다. 참여정부때도 일을 잘했는지 금일봉을 받아 화재가 되기도 했다.[5]즉, 찢계는 노무현과 문재인의 신임을 받는 홍남기를 모피아라고 악마화하면서 노무현과 문재인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특히 그의 코로나 시국때의 활약을 무시할 수는 없는데 경제부총리라는 직책이 경제 정책을 어느정도 책임지는 직책임을 고려해보면 코로나 시국때 한국 경제는 선방했는데 이 사람의 공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일을 잘하는지 전술했듯이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사임을 시사했을때 문재인 대통령은 일을 워낙 잘했는지 그를 재신임하였다.
이재명계의 악마화[편집 | 원본 편집]
이재명과 이재명계의 악마화 대상 제 1순위
전술하다시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재명표 포퓰리즘성 재난지원금 지원을 저지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재명표 정책이라고 할 수도 있는 지역화폐 예산을 삭감시킨 장본인이다. 이 때문에 이재명과 이재명계는 지속적으로 홍남기를 악마화하고 있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악마화 레파토리가 모피아. 포퓰리즘성 재난지원금을 막고 재정건전성에 집착하는 성향 때문에 그를 모피아로 악마화하고 있다. 소비를 진작하고, 상위 12퍼센트를 커버하기 위한 상생소비지원금에 관해서도 카드사랑 유착했다며 모피아 드립을 계속 반복하는 중이다.
또 다른 레파토리는 문재인 대통령을 의중과 여론을 무시하고 자미 맘대로 한다는 것. 정작 문재인은 홍남기가 자진해서 그만두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홍남기를 유임시켰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6월 28일에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의 모두발언에서 "정부 지원도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더 많이 집중되어야 합니다."[13]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선별 지원 지지를 시사하였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같은 자리에서 한 맥락상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뜻을 가진 발언인 "과실도 함께 나눠야 합니다"[13] 발언을 전국민 지원을 시사하는 것으로 과대망상해석하고 있다.[14] 여론 또한 대체적으로 이재명표 재난지원금 지급에는 부정적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문파들은 이재명계가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들이박지는 못하니 상대적으로 만만한 홍남기를 들이박음으로써 간접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들이박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학력[편집 | 원본 편집]
경력[편집 | 원본 편집]
- 1986년: 제29회 행정고시 합격
- 1986년 4월 ~ 1991년 9월: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 협력정책과 행정사무관
- 1999년 6월: 기획예산처 예산총괄과 서기관
- 2001년 10월 ~ 2002년 2월: 기획예산처 성과주의예산업무지원팀장
- 2002년 2월 ~ 2003년 4월: 기획예산처 예산기준과장
- 2003년 4월 ~ 2004년 3월: 기획예산처 장관 비서관
- 2004년 3월 ~ 2005년 1월: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
- 2005년 1월 ~ 2006년 7월: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
- 2006년 7월 ~ 2007년 7월: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실 정책보좌관
- 2007년 7월 ~ 2010년 9월: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공사 참사관
- 2010년 10월 ~ 2011년 7월: 복권위원회 사무처장
- 2011년 7월 ~ 2012년 1월: 기획재정부 대변인
- 2012년 1월 ~ 2013년 2월: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 2013년 1월 ~ 2013년 2월: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
- 2013년 2월 ~ 2015년 2월: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비서관실 국정기획조정비서관
- 2015년 2월 ~ 2016년 1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실 정책보좌관
- 2016년 1월 ~ 2017년 5월: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 2017년 5월 ~ 2018년 11월: 국무조정실장
- 2018년 12월 ~ : 제8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2018년 12월 ~ :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당연직위원
- 2018년 12월 ~ :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 재정분권 분과위원회 위원
- 2018년 12월 ~ : 국민경제자문회의 당연직위원
- 2018년 12월 ~ :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당연직위원
- 2018년 12월 ~ :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당연직 위원
- 2018년 12월 ~ : 녹색성장위원회 당연직위원
- 2018년 12월 ~ :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 정부위원
- 2018년 12월 ~ :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당연직 위원
- 2019년 5월 ~ :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 (정부)
- 2021년 4월 ~ 2021년 5월: 국무총리 직무대행
- 2021년 5월 ~ : 2050 탄소중립위원회 당연직위원
내용주[편집 | 원본 편집]
참조주[편집 | 원본 편집]
- ↑ 박태근 (2018년 11월 9일). “홍남기 “군면제, 공직 생활하며 가슴 속에 늘 부담” …만성간염 때문”. 《동아일보》. 2018년 12월 11일에 확인함.
- ↑ “누가 홍백기래? 7전8기 또 살아남은 '홍뚜기' 홍남기의 저력”. 2021년 4월 16일. 2021년 4월 17일에 확인함.
- ↑ 3.0 3.1 3.2 3.3 김디모데 (2018년 12월 11일). “[Who Is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비즈니스포스트》. 2018년 12월 11일에 확인함.
- ↑ 임화섭 (2017년 5월 11일). “'국정조정 사령탑'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경험 풍부한 정책통”. 《연합뉴스》. 2018년 12월 11일에 확인함.
- ↑ 5.0 5.1 손해용 (2018년 11월 9일). “盧청와대 때 정책보좌관...盧격려금 이례적으로 받아 화제”. 《중앙일보》. 2021년 7월 11일에 확인함.
- ↑ 성혜미 (2018년 11월 9일). “[일문일답] 홍남기 "경제영역 협치 노력하겠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서울). 2018년 12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2월 10일에 확인함.
- ↑ 차지연 (2018년 11월 27일). “국회, 12월 4일 홍남기 부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개최”. 《연합뉴스》. 연합뉴스. 2018년 12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2월 10일에 확인함.
- ↑ 차지연 (2018년 12월 7일). “국회 기재위,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연합뉴스》. 연합뉴스 (서울). 2018년 12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2월 10일에 확인함.
- ↑ “홍남기 부총리 10일 취임…내년 경제정책방향·인사폭 관심”. 2018년 12월 9일.
- ↑ “홍남기 취임 일성 "최저임금 보완…김수현 매주 만나겠다"”. 2018년 12월 12일.
- ↑ “홍남기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비중있게 검토 중"”. 《연합뉴스》. 2018년 12월 28일.
- ↑ https://news.joins.com/article/23911255
- ↑ 13.0 13.1 “확대경제장관회의 모두발언” (보도 자료). 《대한민국 정부》. 2021년 6월 25일. 2021년 11월 9일에 확인함.
- ↑ “文대통령 '모두가 이룬 경제회복, 과실도 함께 나눠야'”. 《클리앙》. 2021년 6월 28일. 2021년 11월 9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전임 이상목 |
2대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2016년 1월 18일 ~ 2017년 5월 10일 |
후임 이진규 |
전임 이석준 |
제4대 국무조정실장 2017년 5월 11일 ~ 2018년 11월 9일 |
후임 노형욱 |
전임 김동연 |
제8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18년 12월 11일 ~ |
전임 정세균 |
국무총리 직무대행 2021년 4월 16일 ~ 2021년 5월 13일 |
후임 김부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