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누굴까

L위키, 시민들이 참여하여 가꾸는 리버럴 위키

안녕하세요.

아주 먼 옛날 노빈손 사이트에서 활동하던 누굴까입니다.

오늘의유머에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활동했고, 루리웹에서 2014년부터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위키는 처음이라 많이 어색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짧은 글이라도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름의 유래[편집 | 원본 편집]

누굴까라는 이름은 인터넷상에서 제가 누군지 알기 어렵도록 만든 닉네임은 딱히 아니고, 그저 쓸 만한 닉네임이 떠오르지 않아서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다른 사이트에선 누굴까란 닉네임을 이미 다른 누군가가 쓰는 경우가 잦아 영문 닉네임을 고민하다가 Nushian이라는 닉네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정치 성향[편집 | 원본 편집]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치 성향이 조금씩 바뀌긴 했습니다. 그러나 테스트를 해보면 대체로 결과가 사회자유주의자로 나옵니다. 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세상의 온갖 논쟁적인 이슈가 테스트에 반영된 것은 아니므로 사회자유주의자처럼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틀에 자신을 끼워맞춰 생각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위험성이 따른다고 봅니다.

2021년에 테스트한 정치성향 결과입니다.
2017년에 테스트한 정치성향 결과입니다.

동의하거나 지지하는 내용들[편집 | 원본 편집]

정부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제에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경제에 개입해야 합니다. 경제는 분명히 저절로 굴러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적절한 개입 없이 굴러가는 경제는 위험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산업 분야에 규제나 제한이 늘어나는 까닭은, 명백한 필요성에 의한 것입니다. 단지 정부라도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정부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아무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발상은 무책임할뿐더러 시대역행적이기까지 합니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정부실패도 시장실패도 모두 고려한 적절한 규제가 마련되어야죠.


시장이 자유로워질수록 사람들도 더 자유로워집니다. 이는 확실합니다. 단지 그 자유로워진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할까요? 이는 테스트에 반영되지 않는 생각입니다.


생명공학 같은 고도의 윤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연구는 시장에 모두 맡길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모든 연구를 도맡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국제적으로 합의된 연구 관련 규정을 기업이 준수하도록 정부가 기업을 통제해야 합니다.


관세는 분명히 경제학적으로 사중손실을 발생시키지만, 국제수지나 환율에 소소한 영향을 미치므로 마냥 없앨 수는 없다고 여깁니다. 꼭 국내 생산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중요한 건 아닙니다.


누진세에 적극 찬성합니다. 다만 세율이나 공제는 나라가 처한 경제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상속은 합법입니다. 또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도 정당합니다. 이를 부인하면 누가 부를 쌓으려 할까요?


도로, 전기, 수도 등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산업을 민영화해서 성공한 사례를 들은 바 없습니다.


양질의 교육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의 권리입니다.


만약 세계정부가 출현한다면 어떻게 굴러갈지는 상상의 영역이지만, 인종, 성별, 재산, 신분에 따른 차별이 모두 철폐되어야 성립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따라서 평등해진 세상에 성립할 정부가 인류에게 해로우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민족주의가 내면화되어 있어 집단 이기주의가 어느 정도 내재화되어 있는 한편, 역설적으로 각 개인이 너무나 개인주의적이므로 세계정부의 출현은 너무나 꿈같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마 가장 논쟁적인 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국가들에게 자국의 전쟁을 애써 정당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명분 없는 전쟁을 찬성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명분 없는 전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압도적으로 많겠지요. 명분은 승리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단지 자국의 전쟁을 아무리 정당화하더라도 제3국이 이를 납득하리라고 예상하기 어려울 따름입니다. 가령 중국의 점증하는 국지도발에 분노한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정당한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선포했다고 칩시다. 한국인 중 누가 일본의 입장을 감히 옹호하려 할까요? 껍데기만 한국인인 사람은 논외로 두더라도 정당한 전쟁이 타국 사람에게 이해되리라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전쟁은 이해받기 위해 치르는 게 아니라 국가의 존망 내지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어서 치르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듯 전쟁은 정치의 연장입니다. 또한 이 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은 심심풀이 삼아 시도해보거나 한낱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치르는 것이 아니며, 무책임한 열정가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것은 신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신중한 수단이다.”


법과 질서 유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악법을 쉽게 못 고쳐서 그렇지 누가 악법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질서 없이 혼돈 속에 사는 것도 단호히 거부할 것입니다.


일반 대중들도 때로는 잘못된 결정을 내립니다. 이런 판단은 제가 선민의식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누구도 완전무결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는 이상, 불완전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일반 대중도 충분히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어차피 그 군중 속에는 저도 있을 거니까요. 진정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실수했음이 명백해진 순간에도 실수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권위는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여전히 맹신했더라면 우리가 지금 인터넷을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완전무결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누리는 권위 또한 완전무결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설령 대법원의 전원일치 판결이라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고 더 나아가 어처구니없을 수 있습니다. 뉴턴도 주식시장에서 쪽박 차고 인간의 마음은 계산할 수 없다고 한 마당에, 누가 인간의 무결함을 믿겠습니까?


이성(理性)은 우리 문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이성은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방지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 문화라고 해서 모두 아름답고 바람직할 수는 없겠지만, 이성은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있게 해줄 무기입니다.

동의하지 않거나 지지하지 않는 내용들[편집 | 원본 편집]

모든 시민의 복지를 보장하는 것보다 균형 잡힌 예산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보지 않습니다. 균형 예산을 고집하다가 큰 대가를 치렀던 적이 있다는 것을 미국에서 발생했던 대공황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균형 예산을 고집하면 확장재정정책을 펼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어떤 경제난에도 통용될 수 있다는 시각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긴축이냐 확장이냐 선택할 때에는 전 세계가 처한 경제적 여건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처방해야 합니다. 다만 어떤 정부도 모든 경제적 위기에 대응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정부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총합을 토대로 굴러가므로 내부시차, 외부시차가 존재하며, 설령 적절한 처방책을 수행하더라도 경제에 신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다고 해서 무턱대고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이성적인 시민이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자선사업이 모든 복지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선사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사회 복지가 큰 도움이 됩니다. 자선사업은 선의라는 포장지로 부패를 가릴 위험이 있습니다.


UN이 대체로 국제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마저도 없으면 세계는 즉각 무정부주의적 세계질서를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국제 원조가 돈낭비가 아님은 대한민국이 몸소 증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마냥 위대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쌓아올린 위업을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입 밖에 꺼내기 꺼려지는 참혹한 역사가 있으며 적폐청산이라는 지난한 과정에 있습니다. 만약 구악을 청산하는 데 온전히 성공한다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나라는 위대해질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아직 위대한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위대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타국을 억압함으로써가 아닌, 타국을 깎아내리고 폄하함으로써가 아닌, 우리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이끌어내어 세계에 이바지하는 나라가 되어 타국으로부터 존경 받음으로써 위대해질 것입니다.


종교는 되도록 정부의 활동에 영향을 끼쳐선 안 됩니다. 종교는 온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감히 선택 받은 정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해선 안 됩니다. 다만 불의에 항거할 때 종교가 나선다면, 시민들이 그에 따를 수는 있을 겁니다. 독재국가에서나 종교의 정치적 역할이 있는 셈이겠죠.